귀찮은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일을 해결하려면 적절한 도구를 찾아야 하고, 새로운 앱을 설치하고, 사용법을 익히고, 설정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비용까지 생각하면 불편하더라도 그냥 하던 방식대로 반복하는 편을 택하게 된다.
해머스푼이 좋았던 이유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하나의 환경 안에서, 반복하는 행동을 알아차린 순간 나에게 필요한 기능을 바로 만들어 붙일 수 있었다. 나에게만 필요한 동작도 별도의 앱을 찾지 않고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추가하다 보니 79일 동안 꽤 많은 기능이 쌓였다.
오늘은 그동안 해머스푼으로 만든 기능 중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정리했다. 해머스푼을 사용한 지 19일째였던 6월 5일에는 단축키 43개와 백그라운드 작업 3개를 사용하고 있었다. 79일째인 오늘 다시 확인해보니 단축키는 52개, 백그라운드 작업은 12개로 늘어 있었다. 모든 코드가 들어 있던 init.lua는 3,316줄에 달했다.
| 6/5 | 8/3, 정리 직전 | 정리 후 | |
| 단축키 | 43개 | 52개 | 44개 |
| 백그라운드 작업 | 3개 | 12개 | 8개 |
| init.lua | - | 3,316줄 | 1,418줄 |
죽은 것과 남은 것의 차이
무엇을 남기고 지울지 살펴보다 보니, 사용하지 않게 된 도구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었다.
| 사용하지 않게 된 기능 | 지금도 사용하는 기능 | |
| 예시 | 영수증 업로드, focus-timeline, 음성 메모, 원씽 집중 잠금 | 창 배치, 앱·저장소 열기, 클립보드 히스토리, 잠자기 방지 |
| 사용 방식 | 별도로 입력하고 실행하거나 결과를 확인해야 함 | 원래 하던 작업 중 필요한 순간에 사용 |
| 관리 | 상태 파일, 자체 UI, 보조 스크립트 등을 관리 | 도구를 위해 별도로 기록하거나 관리할 필요가 없음 |
| 요구하는 변화 | ⚠️새로운 사용 습관이 필요함 | 🟢기존 행동을 그대로 유지함 |
사용하지 않게 된 기능들은 대부분 하나의 독립적인 시스템에 가까웠다. 반면 남아 있는 기능은 원래 하던 작업 안에 들어가 있었다.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는 생존 여부와 관계가 없었다. 1,237줄짜리 영수증 업로드 기능도, 25KB 크기의 작업 상태 도구도 사용하지 않게 됐다. 해머스푼은 새로운 앱을 들이는 비용을 줄여줬지만, 그렇게 만든 기능을 계속 사용하기 위한 습관의 비용까지 없애주지는 않았다.
정리한 날, 또 크게 만들 뻔했다
정리를 마친 뒤 WIP를 관리하는 도구를 해머스푼으로 새로 만들고 있었다. 원래 정한 범위에는 PR 자동 표시뿐 아니라 직접 할 일을 기록하는 수동 백로그도 포함돼 있었다. 백로그, WIP, 완료의 세 단계가 있고 항목을 클릭해 상태를 바꾸며 완료일도 보관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구현 직전에 오늘 정리한 기능들처럼 새로운 습관을 요구하는 도구를 거창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 새 습관을 요구하지는 않으면서 이미 하던 일에 얹는 느낌의 작업인지 새 습관을 요구하는 작업인지 객관적으로 평가해줘
↓ 위 질문으로, 도구에 담고자 했던 2가지 기능을 분리해서 판단해봤다.
| 기능 | ① PR 자동 표시 | ② 수동 백로그 |
| 작동 방식 | GitHub에서 PR 정보를 자동으로 가져옴 | 할 일을 직접 기록하고 관리함 |
| 필요한 행동 | 기존 작업을 하면서 확인 | 항목 입력 → 상태 변경 → 완료 처리 |
| 새로운 습관 | 🟢없음 | ⚠️세 가지 행동을 반복해야 함 |
PR 표시는 기존 작업 위에 자동으로 정보를 얹는 기능이었다. 반면 수동 백로그는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새로운 행동을 계속 반복해야 했다.
그래서 수동으로 백로그를 다룰 수 있는 기능은 제거하고PR과 브랜치를 관리하는 도구에 집중해 만들었다.
PR과 브랜치 내역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위젯

구현하면서 실제 데이터를 확인해보니 열린 PR이 22개였고, 4월에 만든 draft PR도 남아 있었다. 모든 PR을 같은 목록에 보여주면 현재 작업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최근 7일 안에 움직인 PR 7개는 ‘진행 중’으로, 나머지 15개는 ‘정체’로 나눠 표시했다. 최근 완료된 PR도 함께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배운 점
새 습관을 요구하는 도구는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분명한 불편을 느끼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도구를 찾는다. 그런데 정작 그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또 다른 행동을 기억하고 반복해야 한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새로운 습관부터 만들어야 한다. 도움을 받기 위해 만든 도구가 오히려 관리해야 할 일이 되는 셈이다.
이런 현상이 얼마나 보편적일지 궁금해 관련 아티클을 찾아봤다. Marketers Should Leverage, Not Fight, Consumer Habits라는 제목의 글에서 말하길, 소비자가 신제품을 구매하고도 예전 행동으로 돌아가는 현상을 습관 회귀(habit slips)라고 했다. 한 조사에서 제품을 사용하지 않게 된 가장 흔한 이유는 “기존에 하던 대로 돌아갔기 때문”이었고, 전체 응답의 25%를 차지했다. 반대로 꾸준히 사용된 신제품의 63%는 이미 일상에 자리 잡은 물건이나 행동을 대체하고 있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대신, 기존 습관에 제품을 붙이는 방식인 피기배킹(piggybacking)이 제품의 장기적 사용에 더 효과적이 었던 것이다.
사용자는 습관과 행동을 바꾸고자 도구를 사용하지만, 습관과 행동을 요구하는 새로운 것은 사용자의 곁에 남기 힘들다. 이 아이러니를 발견해서 흥미로웠고, 나를 위한 도구와 우리 팀의 제품에 대해 평가해볼 새로운 기준을 알게 되어 좋았다. "이 기능이 사용자에게 새로운 습관을 요구하는가?"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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