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하나의 삶의 이야기로 구성하며 정체성을 이해한다고 본다. 이를 서사적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이라고 한다.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나, 앞으로의 방향을 연결해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된 개념으로 자기연속성(self-continuity)이 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의 내가 서로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감각이다. 여기서 연속성이란 내가 계속 같은 관심사와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달라진 이유와 변화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변화한 나 역시 이전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나 사이에서 이런 연결을 만들어내는 사고 과정은 자전적 추론(autobiographical reasoning)이라고 한다. 단순히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과거의 선택이 현재의 행동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서로 다른 경험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를 해석하는 것이다.
서사적 정체성: 경험을 삶의 이야기로 구성하는 방식
자기연속성: 그 이야기 속 과거·현재·미래의 내가 이어진다는 감각
자전적 추론: 그 연결과 의미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사고 과정
7월 중간 점검과 6월 회고
최근 나는 이 연결을 충분히 만들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7월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여러 행동을 하나의 주제나 흐름으로 묶기 어려웠고, 그래서인지 삶의 의미도 평소보다 옅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오늘, 6월 회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평소 한 달이 끝나면 그달의 일을 돌아보는 편이다. 그런데 6월에는 회고를 하지 않은 채 7월로 넘어왔다. 의도적으로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6월에 무엇을 시작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충분히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오늘 뒤늦게 6월의 기록을 펼쳐놓고 회고를 시작했다. 그러자 몇 가지 연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 6월에 관심을 두었던 주제가 7월의 새로운 행동으로 이어져 있었다.
- 6월에 시도했던 일이 7월에는 다른 형태의 결과로 나타나 있었다.
- 따로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은 같은 관심이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 지금 하고 있는 몇몇 일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이전의 선택이 이어진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6월과 7월의 사건들 사이에 관계를 만들었을 뿐인데, 현재의 행동을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졌다. 성과를 발견했다기보다 흐름을 발견했다. 오히려 7월에 하고 있던 여러 행동을 그룹핑할 수 있게 된 것이 더 중요했다.

회고 전에는 이런 상태였다.
- 7월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 각 행동을 하는 개별적인 이유는 알고 있다.
- 그러나 이 행동들을 함께 설명하는 흐름은 잘 보이지 않는다.
- 그래서 지금의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느끼기 어렵다.
6월 회고를 한 뒤에는 다음과 같이 달라졌다.
- 6월에 시작된 관심과 시도가 있었다.
- 그것이 7월의 행동이나 결과로 이어졌다.
- 서로 달라 보이던 일들 사이에 공통된 주제가 있었다.
- 지금의 행동이 이전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있는지 찾아보다가 자기연속성과 자전적 추론을 알게 되었다.
자전적 추론은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자아 사이에 관계를 만드는 과정이다. 과거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나열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경험이 현재의 생각이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해석한다. 삶에서 변화가 일어났더라도 그 변화가 어떤 과정으로 생겼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서 연속성을 느낄 수 있다.
내가 6월 회고를 하면서 했던 사고를 정리하면 대략 이랬다.
6월에 무엇을 했는가
→ 그것이 7월의 무엇으로 이어졌는가
→ 여러 행동을 묶는 공통된 관심은 무엇인가
→ 이 흐름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회고가 중요한 이유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서사적 정체성이 꼭 필요한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서사적 정체성이나 자기연속성은 일부 사람에게만 필요한 특별한 성질은 아니지만, 사람마다 이 연결을 얼마나 중요하게 느끼는지, 또 어떤 활동을 통해 연결감을 얻는지는 다를 수 있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 나는 과거의 선택과 현재의 행동 사이의 연결을 이해할 때 삶의 의미와 방향감을 더 잘 느끼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에게 회고는 그 연결을 의식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이다.
회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6월의 경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선택과 관심은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7월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다만 그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기 어려웠다.
회고는 결산보다 연결에 가까웠다
그동안 나는 회고를 월말 결산에 가깝게 생각했다. 한 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 정리하고, 잘된 점과 아쉬운 점을 확인하고, 다음 달에 할 일을 정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도 회고의 중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회고의 다른 기능을 알게 되었다. 6월을 돌아보면서 과거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게 되었다. 앞으로 회고를 할 때는 성과나 반성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함께 적어보려고 한다.
- 이번 달에 시작된 관심과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 이번 달의 선택은 어떤 다음 행동으로 이어졌는가?
- 서로 달라 보이는 일들을 묶는 공통된 주제는 무엇인가?
- 지난달의 일은 이번 달에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가?
-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굿!
더 읽어보기
1) Self-Continuity
과거·현재·미래의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자기연속성의 개념과 관련 연구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리뷰 논문이다.
https://www.annualreviews.org/doi/10.1146/annurev-psych-032420-032236
2) The Content and Processes of Autobiographical Reasoning in Narrative Identity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자기를 연결하는 자전적 추론의 내용과 과정을 다룬 연구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09265660700089X
3) Autobiographical Reasoning in Life Narratives Buffers the Effect of Biographical Disruptions on the Sense of Self-Continuity
삶의 변화나 단절을 경험했을 때, 자전적 추론과 자기연속성이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살펴본 연구다.
https://pubmed.ncbi.nlm.nih.gov/2491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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