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커피챗은 왜 달랐을까
매달 팀원들과 돌아가며 커피챗을 하고 있다. 시작한 지는 두세 달 정도 됐다. 처음에는 서로를 더 알아가고, 평소 업무 시간에는 잘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가까웠다. 그 자체로도 좋았다. 관계가 조금씩 편해지고,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주에 했던 두 번의 커피챗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대화를 하고 나서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 단순히 좋은 이야기였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캘린더에 시간이 잡히고, 내가 주말 시간을 내서 UI를 고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팀에 기여할지에 대한 생각까지 바뀌었다.
왜 이번에는 달랐을까 생각해보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 이미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 대화 주제가 업무와 더 가까웠다.
- 고민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꺼냈다.
- 상대방도 그 고민을 자기 일과 연결해서 받아줬다.
- 대화가 끝난 뒤 실제 행동 장치가 생겼다.
결국 이번 커피챗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팀의 목표를 다시 연결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실명 대신 두 분을 각각 사막여우와 호랑이 님이라는 닉네임으로 적어보려고 한다.
사막여우 님과의 대화는 추진력을 나누는 일이었다
사막여우 님과의 대화에서는 내 추진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면 꽤 빠르게 밀어붙이는 편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유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런 면이 더 잘 드러났던 것 같다. 다른 국가의 유저를 인터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리적 장벽이 큰 일이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어떤 방식으로 섭외하고 진행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래도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여러 방법을 찾아보고, 주변의 도움을 구하고, 실제 인터뷰까지 이어갔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보통은 “추진력이 좋다”는 말로 정리될 수 있고 나도 칭찬으로 듣고 “감사합니다” 하고 넘어갔을 것 같다. 그런데 사막여우 님과는 이미 편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A스텝을 추진력 있게 해냈다고 해서, B스텝에서도 같은 에너지가 나는 건 아니더라고요. B에서는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한데 힘드네요.”
이 말을 하면서 나도 내 상태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중국 유저 인터뷰라는 A스텝은 어떻게든 밀어붙였다. 그런데 인터뷰를 했으면 그다음 스텝도 있어야 한다. 알게 된 내용을 바탕으로 제품을 어떻게 바꿀지, 어떤 액션을 이어갈지, 어떤 사람들과 더 이야기해야 할지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A스텝에서 썼던 만큼의 힘이 B스텝에서는 바로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어떤 일을 처음 밀어붙이는 힘과, 그다음 단계까지 꾸준히 이어가는 힘은 다르다. 특히 혼자 하고 있으면 더 그렇다. 처음에는 긴장감과 책임감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그다음부터는 구조가 필요하다. 같이 봐주는 사람, 다음 행동을 같이 잡아주는 사람, 에너지가 떨어질 때 다시 리듬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훨씬 이어가기 쉬워진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막여우 님이 같이 해보자고 말씀해주셨다. 애초에 우리가 하는 일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팀의 큰 목표를 향해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그 뒤로 우리는 그냥 “언젠가 같이 해보자”에서 멈추지 않았다. 실제로 캘린더에 시간이 잡혔고, 약간 발족식 같은 시간도 가졌다. 구호도 정하고 외치기도 하고 ㅋㅋ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막상 해보니 효과가 있었다. 말로만 “열심히 해보자”가 아니라, 우리가 진짜 어떤 시작점을 만든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대화가 행동으로 이어진 이유는, 추진력을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함께 유지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꿨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혼자서도 어떤 일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모든 단계를 같은 힘으로 밀고 갈 수는 없다. 이번 대화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다음 스텝을 같이 잡는 계기가 되었다.
호랑이 님과의 대화는 보는 단위를 바꾸는 일이었다
호랑이 님과의 대화에서도 비슷하게 행동으로 이어진 지점이 있었다.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대화의 후반부에서 내 행동을 바꾼 중요한 순간이 있었다.
내가 호랑이 님이 해주셨으면 하는 작업 중 하나를 자연스럽게 말하게 됐고 나도 질문했다.
“호랑이 님도 제가 뭘 더 해줬으면 하는 게 떠오르시나요?”
그러자 호랑이 님은 화면과 UX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화면이 너무 복잡해 보일 때가 있고, 전반적인 UX가 정말 최선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였다. 유저가 논문을 볼 때 “이게 논문을 읽는 방식이지”라고 느낄 정도로 편한 경험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이 꽤 크게 다가왔다. 나는 그동안 디자인 시스템이나 UI 퀄리티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 생각할 때는 그게 “언젠가 해야 하는 큰 일”처럼 느껴졌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당장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애매했다. 그런데 호랑이 님이 기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자, 그 일이 갑자기 팀원이 실제로 기대하는 일이 되었다.
대화 중에 로컬 디시전과 메타 디시전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어떤 세미나에서 들었던 표현인데, 실험이나 개선을 할 때 사람들이 종종 로컬 디시전에 머무른다는 이야기였다. 버튼 하나를 바꾸고, 문구 하나를 바꾸고, 수치를 1~2%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AI를 활용할 수 있는 지금은 더 큰 단위로 바꿔보면서 10%, 20%의 변화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하면서 나도 생각이 정리됐다. 지금까지 나는 로컬 디시전을 많이 해왔다. 작은 화면을 개선하고, 특정 기능의 사용성을 높이고, 눈앞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했다. 그것도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어쩌면 더 큰 질문일 수도 있었다.
“문라이트에서 논문을 읽는 경험은 지금 구조가 최선인가?”와 같은 질문은 어렵지만 동시에 진짜 제품의 사용성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오른쪽 사이드바, 하단 패널, 기능을 꺼내 쓰는 방식, 아이패드에서도 편하게 볼 수 있는 구조 같은 아이디어들이 대화 중에 나왔다. 완성된 답이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은 관점이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 토요일, 일요일 저녁에 시간을 내서 UI 수준을 높이는 작업을 했다. 막상 해보니 절대 “딸깍”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색과 간격을 조금 다듬고 컴포넌트를 정리하는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코드 구조, 반응형, 기존 사용성, 디자인 일관성이 다 엮여 있었다. 그래도 몇 번 해보니 조금씩 방법이 보였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계속 하다 보니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감이 생겼다. 내가 생각만 하던 메타 디시전이, 실제 작업으로 연결된 순간이었다.
좋은 대화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순간
이번 두 번의 커피챗을 돌아보면, 좋은 대화가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 것 같다. 먼저 관계적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아직 서로 조심스럽기만 한 상태에서는 깊은 고민을 꺼내기 어렵다. 이번에는 이미 어느 정도 편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포장하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화가 업무와 가까워야 한다. 서로의 취향이나 근황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내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 팀의 목표, 제품의 문제와 연결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대화가 끝난 뒤에도 남는 것이 있었다. 사막여우 님과의 대화에서는 내가 혼자 이어가기 어려웠던 다음 스텝을 함께 잡을 수 있었고, 호랑이 님과의 대화에서는 내가 어디에 더 크게 힘을 써야 할지 선명해졌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상대의 구체적인 반응이었다. 사막여우 님은 “같이 도와주겠다”는 말로 내 추진력을 이어갈 구조를 만들어줬고, 호랑이 님은 “UX/UI적으로 이런 기대가 있다”는 말로 내가 봐야 할 문제의 단위를 키워줬다. 혼자 머릿속에 있던 고민이 팀원과의 대화를 거치면서 실제 역할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행동 장치였다. 캘린더에 시간을 잡고, 시작을 의식처럼 만들고, 주말에 실제로 UI를 고치고, 앞으로 무엇을 더 볼지 정했다. 말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장치가 생겼기 때문에 이번 대화는 그냥 좋은 대화로 끝나지 않았다.
커피챗을 두세 달 정도 해보니, 처음과 지금의 느낌이 다르다. 처음에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서로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팀에 기여할 수 있는지 함께 발견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팀원들과 커피챗이 남아 있다. 이제는 그 시간을 조금 다르게 써보고 싶다. “OO님께서 제가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작업이 있나요?” 이 질문 하나가 대화를 꽤 다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혼자 내 역할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팀원들이 느끼는 문제와 기대 속에서 다음 행동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참 좋은 것 같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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