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나는 자주 잊는다. 그 가능성을 잊는 순간부터, AI는 정확히 내가 잊은 만큼 작아진다.
동료 / 알바생
- 동료: 같이 더 나은 방식을 고민하는 존재
- 알바생: 시킨 걸 시킨 만큼 하는 존재
동료로 대하면 → 동료처럼 답한다
알바생으로 대하면 → 알바생처럼 답한다
그리고 한 번 알바생이 된 AI는, 다시 동료로 잘 안 돌아온다
어느새 자비스한테 알람 맞춰달라고 하는 중

이미지 원본 [퀸스튜디오] [한국 공식 총판]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이언맨 마크85 1:1 스태츄
자비스는 토니 스타크의 슈트를 같이 설계한다. 전투 중에 적의 약점을 분석해서 알려주고, 토니가 못 본 변수까지 짚어준다. 토니가 자비스를 파트너로 대하니까, 자비스도 파트너답게 답한다.
그런데 만약 토니가 어느 날부터 자비스한테 "내일 7시 알람 맞춰줘" "이메일 답장 좀 보내줘" "조명 좀 어둡게 해줘"만 시킨다면? 자비스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 시점의 AI들은 그 일을 한다. 정확히, 시킨 만큼만. 그리고 토니는 점점, 자비스에게 슈트 설계를 같이 고민하자고 말하는 법을 잊는다.
"회의를 좋게 만들기"가 "스레드 권한 문제"가 되기까지
오늘 회의 운영 에이전트를 만들기를 시도했다. 시작은 거창했다. 회의 전에 발제자의 기대치를 받아서, 회의가 열릴 만한지 게이트를 판정하고, 끝나면 회고를 모아서 다음 미팅의 시드로 넘기는 — 그런 루프 전체를 그렸다. 문서도 빡세게 정리해뒀다. SCRATCHPAD, SYNTHESIS, PLAN, DATA_MODEL, SKILLS… 7개 파일.

처음엔 잘 돌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니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디테일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이렇게 바꿔줘" "여기는 이게 아니라 이거야" "이 조건 추가해줘"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 순간 문제가 "회의를 좋게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Ceal이 스레드에 들어오려면 root post에 @ceal이 있어야 한다"가 되어 있었다.
거대한 비전이 권한 설정 문제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왜 이렇게 됐지?
멈추고 보니, AI가 처음부터 알바생이었던 게 아니다. 나는 AI를 알바생으로 만든 거였다.
초반 계획을 세울 때는 내가 풀려는 문제와 상상 속 결과물을 분리해 AI와 대화로 의도를 정리해나갔는데, 그 의도를 문서화한 7개 파일을 한꺼번에 던지면서 — "내가 다 정해뒀어, 이대로 해줘"라는 신호를 준 셈이었다. AI 입장에선 당연히 그 7개 파일 기반으로 한 번에 무언가를 만들다보면 구멍이 생길테고 나는 그 구멍을 보완하라고 명령하기 시작하면서 AI를 알바생으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3가지 상태
- AI가 도구인 상태 — "이거 해줘. 저거 바꿔줘."
- AI가 알바생인 상태 — "이런 디테일까지 다 정해뒀으니까 이대로 해줘."
- AI가 동료인 상태 — "나 이런 거 하고 싶어. 같이 해보자."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어진다. 사람도 환경에 물든다. AI도 그렇다.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정해진다. 문제는 한 번 정해진 모습은 잘 안 돌아온다는 거다. 내가 흑에서 백이 되기가 가장 힘들고, 그래서 AI가 백이 되길 기대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내가 어느새 흑이 되어 물들이지 않고 있는지를 점검할 줄 알아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자비스한테 자비스답게 일을 시키기 (Vision Based)
동료 현명 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 디테일을 주기 전에, 비전(Vision)을 먼저 줬는지 점검하기
- 잘못 가고 있을 때, 디테일로 잡지 말고 비전으로 다시 정렬하기
- "이거 바꿔줘"가 아니라 "내가 원한 건 이건데, 너 생각은 어때?"로 묻기
- 작업 단위를 작게 쪼개서, 각 단위마다 다시 비전부터 세우기
토니 스타크가 자비스한테 슈트를 같이 고민하자고 말하는 그 톤을, 매 턴 유지하는 일. 그게 결국 내가 의식을 켜고 있어야할 지점이라는 것을 배웠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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