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4월 TIL #18] 자비스한테 알람 맞춰달라고 하기라는 제목의 회고를 썼다. 그 내용은, AI는 정해진 존재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 동료로 대하는 것: 디테일을 정해서 던지지 않고 비전을 공유한 뒤, 같이 더 나은 방식을 고민하는 존재로 대하기
- 알바생으로 대하는 것: 답을 정해두고, 시킨 걸 시킨 만큼만 정확히 해주길 기대하기
동료로 대하면 AI는 함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때문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 더 나은 답을 내어줄 가능성이 커지고, 알바생으로 대하면 AI는 내가 정한 답만을 정확히 그대로 실행한다. 그래서 디테일을 주기 전에 비전을 먼저 줬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오늘은 그 다음날이었다. 회고 내용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면서 AI를 대해봤다. 그러자 정말 바로 엄청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 1단계: AI가 더 나은 답을 가져왔다
UX 개선 작업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아래와 같이 질문을 던졌다. 예전 같았으면 "○○○이라는 표현으로 수정해주세요"라고 답까지 정해서 던졌을 거다. 이번엔 의도적으로 답을 열어두고 물어봤다.

(나의 질문) 파일명과 다른 제목 = 논문 원 제목..? 일텐데 인식된 논문의 원 제목으로 지정됐다는 뉘앙스가 나올 것 같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당신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파일명과 다른 제목이라는 워딩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것은 ux writing 측면에서 어떻게 여겨지나요?
그랬더니 AI가 내가 떠올린 표현보다 더 적합한 표현을 골라서 제안해줬다.

(Codex 답변) "원 제목"이라는 말도 매력적이지만, 시스템이 항상 100% 공식 원 제목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면 살짝 과장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논문 제목' 정도가 가장 안전하고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질문을 닫아두고 답까지 정해서 던지면 AI는 그 답이 정말 최선인지 판단할 기회를 잃는다. 내가 정한 답 안에서 그걸 그대로 적용하는 일만 하게 된다. 답을 열어두고 물어봐야 비로소 AI가 자기 판단을 보여준다는 것을 여기서 확 체감했다.
📍 2단계: AI가 시킨 것 너머의 영역을 짚어줬다
동료로 대하는 방식의 효과를 체감한 후,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정답이 아닌 질문을 하려 했다. 이번엔 "autobot 스킬은 CI 실패 원인도 파악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Codex 답변) 지금 상태의 autobot은 CI 실패 원인 파악까지는 목표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현재는 'bot 리뷰 thread 정리'에 집중되어 있어요. 다만 비전에 맞추려면 포함하는 게 좋습니다. 최종 점검 단계라면 unresolved bot review뿐 아니라 PR checks 상태도 같이 봐야 하니까요.
AI는 "지금은 안 되지만, 비전상 되어야 한다"라고 답했다. 질문 너머의 영역을 스스로 짚어준 거다. 그리고 그 근거는 또 비전이었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이미 별도 스킬로 gh-fix-ci가 있으니 autobot에 그 흐름을 무인 모드로 호출하는 규칙을 추가하면 깔끔하다"는 구체적 설계까지 내놨다.
북극성, 즉 이 대화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가 공유되어 있으니 AI는 "이건 시키지 않았지만 비전상 필요해요"라고 먼저 말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AI는 시킨 일을 하는 자리에서, 같이 일을 정의하는 자리로 옮겨왔구나 느꼈다.
📍 3단계: AI가 우리의 비전을 스스로 정의하고 그에 맞춰 개선을 제안했다
이젠 진짜 동료에게 할 법한 말로 "당신이 비전을 기준으로 사고해주니까 큰 도움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AI는 이렇게 답했다.

(Codex 답변) 고마워요. 이 스킬의 좋은 북극성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PR이 배포 가능한 상태에 가까워진다'인 것 같아요. 그 기준이면 autobot의 책임 범위는 단순 코멘트 처리보다 조금 더 넓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 스킬에 담고자 했던 큰 목표(비전)를 스스로 정리하고, 그 비전 위에서 지금 작업의 책임 범위를 다시 그려주었다. AI를 동료로서 대하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린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가장 크게 체감한 순간이었다.
마무리
AI를 알바생이 아닌 동료로 대하며, 내가 내린 정답이 아닌 이루고 싶은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만으로 AI와 나는 더 빠르게, 더 양질의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AI가 자기 판단을 가지고 일하기 시작하니, 내 관심사도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이 작업을 어떻게 끝낼까"가 아니라 "AI가 다음에도 이렇게 잘 판단하려면 뭐가 필요할까"로.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보니, 이번 작업 자체를 직접 개선하려는 게 아니라 스킬을 다듬고 있었다.
진정한 에이전트 워크플로로 간다는 게 아 이런 건가, 싶었다. 내가 일을 직접 하던 자리가 비고, 그 자리에 "동료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일해야 한다는 건 익히 들어왔고, 잘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고개도 끄덕였었다. 그런데 정작 내 일에서는 좀처럼 변화가 크지 않았는데, 오늘 그 방향을 살짝 맛본 것 같아서 기뻤다. 역시 보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직접 체감하고 시도해봐야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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