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덕분에 지금 당장 만들 수 있는 것은 많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유저를 위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저에게 필요 없는 것까지 와구와구 만들어놓고 "다 필요하셨죠?" 하고 툭 던지는 장면이 저도 모르게 많아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반대로 해보기로 했어요. AI가 10가지를 만들 수 있을 때, 의도적으로 3가지만 만드는 것.
테스크는 Moonlight(팀에서 만들고 있는 PDF 리더 앱)의 PDF Viewer UX/UI를 재설계해보는 것이었어요. 여러 기능들 중 사용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기능만을 조합해 Workspace를 만들어 쓸 수 있게 하는 아이디어, 그 첫 번째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고자 했어요. 그리고 머릿속에서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프로토타이핑을 해보면 좋겠다 — 그러면 지금 AI로 빠르게 만들면 되겠다 — 근데 그게 또 와구와구 만들기의 반복 아닌가? 그 생각이 멈추는 지점에서 이번 수련의 규칙이 생겼습니다 🧘
1. 규칙부터 정했어요 — 작게 만들기 위한 제약
이 테스크를 가지고 해볼 수련의 규칙은 단순했습니다.
- 시간 제약: 1시간 안에 만들기
- 핵심 경험을 담아내기 (기능을 조합해 쓸 수 있는 Workspace를 표현)
- 그러나 고퀄이 아닌 팀이 테스트할 수 있는 최소 뼈대 수준의 프로토타입 만들기
2. 기능 10개가 3개로 줄어든 순간
작업 범위를 정하기 전에, 머릿속에 있는 걸 먼저 말로 꺼내고 싶었어요. 정혁 님이 만들어주신 /interview 스킬(AI와 대화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다뤄야 할 기능이 10가지 정도 되어 막막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대화를 이어가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지금 1시간 동안 누구를 위해 만드는 거지?"
최근 읽던 『유저 스토리 맵 만들기』에서 본 그림이 떠올랐어요. Walking skeleton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건, 말풍선 안에 이걸 쓸 유저의 초상을 먼저 그리는 것이라고요.

유저를 떠올리면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할 최소 수준이 보인다. 책이 말하는 최초의 MVP, walking skeleton이 바로 그거였어요.
그래서 페르소나부터 그렸어요. AI-Led Researcher — AI 기능으로 논문을 빠르게 이해하고, 필요한 근거만 원문으로 확인한 뒤, 핵심을 노트에 정리하는 사람. 다뤄야할 10개의 기능들을 그 사람에게 통과시키니, Summary / Discussion / Note 세 가지만 집중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개에서 3개로. 이번 작업 전체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바로 여기였어요.
3. 작은 단위로 쪼개서 만들기
여기까지 15분. 그다음부터는 본격적인 구현이었어요.
| 시각 | 내용 | 소요 |
|---|---|---|
| 12:40 → 13:08 | Summary 패널을 사이드바에서 떼어 플로팅 창으로. React Portal로 docked ↔ floating 전환, 드래그·리사이즈 구현, 버그 수정까지 — 전부 첫 경험. | 28분 |
| 13:08 → 13:15 | Note를 같은 패턴으로 복제. | 7분 |
| 13:15 → 13:24 | Discuss도 복제. 입력창을 통째로 옮기는 대신, 기존 코드에 이미 열려 있던 이벤트 경로를 재사용해 다섯 줄로 마무리. | 9분 |
| 13:24 → 13:32 | /gitgit, /pr 스킬로 Draft PR을 팀 레포에 올림. |
8분 |
| 합계 | 52분 | |
Summary에 28분이 몰린 건, 거기서 Provider, Portal, 드래그, 리사이즈, 버그 수정을 전부 처음 겪었기 때문이에요. Note와 Discuss는 그 위에 변주만 얹으면 됐고요.
4. "Working하는 MVP인가?"를 마지막으로 물었어요
PR을 올리고 멈출 수도 있었는데, 한 가지가 걸렸어요.
지금 상태는 Summary, Discuss, Note를 각각 꺼낸 다음 일일이 배치해야 했어요. 패널을 떼어내는 경험을 테스트하기엔 맞았지만, 처음 생각했던 Workspace의 핵심인 "나에게 맞는 도구들의 조합"으로 논문 읽는 경험을 팀원들에게 짧은 시간 내에 경험시켜주기에는 거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핵심 경험을 헤치지 않도록 하는 데에만 시간을 조금 더 들이기로 했습니다.
| 시각 | 내용 | 소요 |
|---|---|---|
| 13:38 → 13:49 | 상단 툴바에 AI-Led 프리셋 버튼 추가. 클릭하면 세 패널이 한 번에 뜨고, 사이드바는 자동으로 닫힘. |
11분 |
| 13:49 → 13:59 | 플로팅 창 헤더에 A- A+ 글꼴 크기 버튼 추가. 기존엔 설정 모달까지 가야 조절 가능했던 것을. |
10분 |
| 합계 | 21분 | |
회고: 덜 들이니 덜 두렵다
| 단계 | 소요 |
|---|---|
/interview로 작업 범주 결정 |
15분 |
| 작업 1단계 — 3개 패널 플로팅화 + Draft PR | 52분 |
| 작업 2단계 — AI-Led 프리셋 + 글꼴 크기 버튼 | 21분 |
| 합계 | 1시간 38분 |
목표한 1시간보다 38분 더 걸리긴 했지만, AI에게 휘둘리지 않고 의식적으로 작업하는 시간을 가져 좋았습니다.
그리고 얼른 팀원들과 이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얘기를 나누고 싶어졌어요. 저는 보통 무언가에 많은 노고를 들이면, 오히려 "별로"라는 말을 들을 순간이 두려워지는 편이에요. 들인 시간과 두려움의 크기가 비례하는 것 같은 감각이랄까요.
그런데 이번엔 고작 1시간 38분밖에 안 썼어요. 두려울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빈치의 그림에서, 모나리자는 n번째 단계에서야 완성돼요. 그 앞의 단계들은 모두 "버려질 게 당연한" 단계들이에요. 이번 1시간 38분은 그중 첫 번째 단계였고, 두 번째 단계는 다음 주 팀의 반응으로 시작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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