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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TIL #11] 툴바 실험 리뷰: UX 언어로 말하기

besoluble 장은솔 2026. 4. 21. 21:54

왜 나는 UX가 아니라 데이터로 말하려 했을까?

툴바 스타일 후속 실험을 정리하다가 정훈 님께 리뷰를 받았다. 요지는 이랬다.

“가설을 더 구체적으로 세우면 좋겠다. A/B/C 각각에 대해 실험자의 관점과 가설이 명시되고, 왜 펼쳐지는 방식이 사용률을 올릴 것이라 봤는지 UX 관점의 가설이 있으면 좋겠다. 결론도 지금은 데이터 설명에 가까운데, 어떤 가설이 검증되었고 어떤 마찰이 어떻게 해결됐는지로 가면 좋겠다.”

읽는 순간 맞는 말이라는 건 바로 알았다. 그런데 동시에 약간 흠칫했다. 나는 머릿속으로는 분명 원칙과 의도를 가지고 설계했기 때문이다. B는 왜 호버로 갔는지, C는 왜 리스트 항목으로 올렸는지 나한테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서에는 그게 없었다.
왜?


📍발견 — 게으름이 아니라 저항감

처음엔 단순히 문서화 게으름이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엔 있는데 글로 옮기는 걸 미룬 것. 그런데 글을 써보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 깨달았다. 내가 글로 못 옮긴 건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다. 쓰려고 하면 오글거렸다.

“사용자가 chat의 존재를 다른 카테고리로 지각해서 주의 스캔에서 제외한다”
“호버는 조건부 signifier라 존재를 모르는 기능의 discoverability에는 부적합하다”

이런 문장이 키보드 밑에서 멈췄다. 내가 이런 말을 쓰는 게 뭔가 있어 보이는 척하는 것 같았다. 데이터 표는 얼마든지 붙일 수 있었다. “C그룹 chat_submit 14.7% (+6.7%p)”. 이건 내가 만든 말이 아니니까, 숫자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책임질 게 없다. 그런데 “지각 카테고리”니 “signifier”니 하는 말은 내가 주장하는 말이었다. 내 입에서 나오면 틀릴 수도 있고, “니가 뭘 안다고”가 돌아올 수도 있었다.


📍해부 — 원인 3가지

첫째, 데이터 뒤에 숨는 게 안전했다. 숫자는 내가 만든 게 아닌 사실이고, 해석은 내가 만든 주장이다. 숫자만 쓰면 나는 관찰자이고, 해석을 쓰면 나는 당사자가 된다. 무의식적으로 계속 관찰자 자리에 머물러 있고 싶었던 것 같다.

둘째, 전문가 언어를 쓰는 내가 사기꾼처럼 느껴졌다. “discoverability”라고 쓰는 순간 내가 UX 전문가인 척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부족한 거 같은데, 그 언어를 쓰는 게 자격 없이 흉내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 Claude가 한 말이 좀 깊이 와닿았다 — “전문가들도 그 언어를 처음 쓸 땐 다 어색했다. 쓰면서 체화되는 거지, 체화된 다음에 쓰는 게 아니다.” 오글거림은 “아직 아닌데 쓰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지금 체화되는 중이다”라는 신호였다.

셋째, 한국어 맥락에서 개념어로 말하는 건 허세로 읽히기 쉽다. “인지 부담이 높아서 주의 필터링이 작동했다”고 쓰면 누군가 “그냥 사람들이 못 봤다고 하면 되지”라고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둘은 사실 다른 말이다. “못 봤다”는 현상이고 “주의 필터링”은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에 이름을 붙여놔야 다음 실험에서 예측에 쓸 수 있다. 이름이 없으면 매번 직관으로 새로 풀어야 한다. 허세처럼 느껴졌던 그 용어들이 사실은 생각의 저장 단위였다.


📍전환 — 리뷰 전 → 리뷰 후

리뷰 전 내 문서의 결론은 이랬다.

“B그룹은 highlight를, C그룹은 chat_submit을 더 유도하는 경향. 신규 유저에서 C그룹의 chat_submit 효과가 특히 두드러짐.”

이건 데이터 설명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있지만 왜 일어났는지, 그래서 뭘 배웠는지는 없다. 다음 실험을 설계할 때 여기서 가져올 게 별로 없다.
리뷰 후 결론은 이렇게 바꿨다.

“사용자가 느낀 마찰: 이전 실험 C그룹에서 사용자는 chat을 다른 기능과 다른 시각 형식(placeholder)으로 마주하게 됨. 이 차이로 인해 chat이 ‘기능 리스트의 동등한 선택지’가 아니라 ‘다른 카테고리의 무언가’로 지각되어, 주의 스캔에서 제외되고 존재 자체가 인지되지 않는 상태가 발생.

B의 해결 시도와 실패: 호버 인터랙션은 이미 그 영역에 관심을 가진 사용자에게만 발동되는 조건부 인터랙션이므로, 존재 자체를 모르는 기능의 discoverability에는 부적합.

C의 해결 시도와 성공: chat을 다른 기능과 같은 시각 형식의 리스트 항목으로 올려, 같은 카테고리의 동등한 선택지로 지각하도록 만듦.

종합 배움: ‘시각적으로 다르게 = 강조’라는 직관은 틀릴 수 있음. 차별화가 지각 카테고리 경계를 넘으면 오히려 무시됨.”

같은 데이터인데 결론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게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다음 실험에서 새 기능을 기존 UI에 추가할 때 “이 기능을 다른 형식으로 강조해야 하나, 같은 형식으로 통합해야 하나”를 판단할 때 이번 결과를 근거로 쓸 수 있다. 데이터만 있을 땐 불가능했던 일이다.


마무리

돌아보면 내가 오글거린다고 느꼈던 건 아직 내 것이 아닌 언어를 내 것으로 만들려 할 때의 마찰이었다. 마찰을 감수하고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내 언어가 될 것이다. 의식적으로 그 분야의 언어로 내 생각을 내뱉어야겠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