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고에서 내가 놓친 건 뭐였을까?
지난 [4월 TIL #11] 회고에서 “UX 언어로 말하기”의 저항을 뚫는 것까지 쓰고, 나는 그 실험 회고가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규영 님이 UX 피드백에 대해 정리해두신 글을 공유해주셨다. 읽는 동안 그 실험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 번 더, 더 깊게 회고할 기회가 온 거였다.
트리거 문장①: 제약을 위한 공부
“인간 인지에 대해 알수록 디자인에 많은 제약이 생긴다.”
읽으면서 묘했다. 보통 제약은 자유를 빼앗는 것 아닌가?
➔ 떠올린 실험 내용
실험 후에 내가 정리했던 문장 두 개를 다시 떠올려봤다.
- 차별화가 지각 카테고리 경계를 넘으면 오히려 무시됨.
- 호버는 조건부 signifier라 존재를 모르는 기능의 discoverability에는 부적합.
이게 각각 하나의 제약이었다. 그때는 사후에야 이 언어를 찾았지만, 이 두 제약을 실험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면 B그룹(호버로 펼쳐지는 방식)이 왜 실패할지 설계 단계에서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나의 생각
제약이 없어서 자유롭게 실험했던 게 아니라, 제약이 없어서 먼 길을 돌아간 거였다. 생각해보면 이런 거다. 빈 종이에 “뭐든 그려봐”라고 하면 막막하다. “고양이를 그려봐”라고 하면 시작할 수 있다. “슬픈 고양이를 그려봐”라고 하면 더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다. 제약은 자유를 빼앗는 게 아니라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트리거 문장②: “직관 vs 데이터”는 잘못된 이항대립구도
“‘직관 vs 데이터’는 잘못된 이항대립구도이고 ‘직관 via 데이터 via 직관…’ 이런 루프를 만들어야 한다.”
직관과 데이터를 대립시키고 “뭐가 더 중요해?“를 묻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거였다. 직관은 탐색의 시작점을 잘 찾는 역할, 데이터는 그 시작점 근처에서 최적점을 찾는 역할. 둘은 역할이 다를 뿐 대립하지 않는다.
➔ 떠올린 실험 내용
이번에 진행한 실험이 바로 이 루프 위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관으로 “chat이 placeholder 형식으로 달라서 주의 스캔에서 제외됐을 것”이라는 시작점을 잡았다. 데이터가 C그룹 chat_submit 14.7% (+6.7%p)로 그중 C안이 맞다고 알려줬다. 그 결과 직관이 업데이트될 수 있었다.
➔ 나의 생각
다음에 또 다른 선택을 할 때 이 업데이트된 직관이 쓰인다. 이렇게 쌓아나간 직관들이 다음 데이터와 직관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트리거 문장③: 씨앗 질문의 힘
“좋은 결과가 있었을 때, 그게 뭐 때문인지 어떻게 아는가.”
그 글 전반에 깔려 있던 질문은 이거였다.
➔ 떠올린 실험 내용
내가 원래 설계한 건 A/B였다. A는 기존, B는 이전 실험에서 좋았던 포인트(같은 형식의 리스트 항목으로 통합하는 방식)를 살린 것. 내가 생각한 그 포인트가 맞다는 걸 증명하려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정훈 님이 리뷰 때 이전 실험에서 좋았던 게 정말 그 포인트 때문인지 다른 부분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은지 물어봐주셨다. 그 질문으로 실험이 달라졌다. 내가 맞다고 생각한 하나의 가설을 증명하려던 실험이, 여러 가능한 원인 중 뭐가 진짜인지 구분해보는 실험이 됐다. A(기존) / B(호버로 펼쳐지는 방식) / C(같은 형식의 리스트 항목으로 통합)를 나눠 돌린 ABC가 그렇게 나왔다.
➔ 나의 생각
사람은 내가 맞다는 걸 확인하려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그 본능을 의심하고 “혹시 내가 모르는 게 있나?“를 먼저 묻는 게 씨앗 질문이다. 나는 보통 내 생각을 증명하는 쪽으로 실험을 설계해왔다. 다음엔 설계 전에 나도 먼저 품어보자.
마무리
지난 [4월 TIL #11] 회고에서는 “내가 만든 것을 내 언어로 설명하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늘은 훨씬 더 본질적인 지점에 다다른 것 같아서 좋다. 제약을 쌓아가는 일, 직관과 데이터를 루프로 엮는 일, 그리고 그 루프의 시작점이 되는 씨앗 질문을 내 안에서 기르는 일 — 이 세 가지가 내가 앞으로 오래 붙잡고 갈 축이 될 것 같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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